일본 최남단 후쿠오카에서 최북단 삿포로까지, 신칸센도 비행기도 없이 오직 전철만으로 2,000km를 종단한다면 며칠이 걸릴까? 청춘18티켓 하나로 기차만 타고 5일간 일본 전역을 종횡무진한 유쾌한 기록. 교통, 먹거리, 지역문화까지 꿰뚫는 압도적 일본 기차 여행기!
1. 전철로만 2,000km 종단, 청춘18티켓으로 떠나는 일본縦断
후쿠오카 텐진역에서 시작한 여정. 이곳은 단순한 지방 도시의 터미널이 아니라, 일본의 교통망이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작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지하철이나 전철은 도시 내 혹은 인근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 전철로만 국토의 종단이 가능하다. 후쿠오카에서 삿포로까지 약 2,000km 거리. 상식적으로는 비행기나 신칸센을 타야 가능한 거리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신칸센 금지, 전철만 허용이라는 원칙이 있다. 단, '청춘18티켓'이라는 특별한 패스를 사용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청춘18티켓은 일정 기간 동안 일본 전역의 일반 전철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JR의 계절 한정 패스다. 가격은 약 12,500엔(한화 약 10만 원)으로, 5일간 전철을 탈 수 있으며, 연속 사용이 아니라 원하는 날짜에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신칸센이나 특급은 탈 수 없지만, 이 패스를 잘만 활용하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다. 특히 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 이 패스는 여행자에게 천군만마나 다름없다.
후쿠오카를 출발한 여행자는 기타큐슈를 거쳐 시모노세키로 향했고, 이곳에서 주말에만 열리는 ‘가라토 시장’에서 스시를 구입해 기차 안에서 먹는 소소한 낭만을 즐겼다. 기차 타는 재미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매번 바뀌는 창밖 풍경과 도시의 분위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동 중에 만난 귀여운 열차, 낯선 동네의 노포, 익숙한 편의점까지. 여행자는 철저히 '일상 속 비일상'을 찾아 움직였다. 기차를 타고 지나치는 수많은 역과 풍경은 단순히 ‘어디를 갔다’보다 훨씬 더 큰 경험으로 남는다.
1일차 일정은 히로시마에서 마무리됐다. 히로시마에선 현지 특산 요리인 ‘오코노미야키’를 맛봤는데, 오사카 스타일과는 달리 면이 들어간 형태로 꽤나 독특했다. 여행자는 맛에 감탄하며, “맥주와 최고의 조합”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이런 지역 특색 있는 음식은 기차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주며, 도시마다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한다. 히로시마에서 하루를 마친 후엔 비교적 저렴한 근교 도시로 이동해 숙박비를 아끼는 전략도 택했다. 이러한 여행 방식은 예산과 시간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춰주는 일본 전철 여행의 묘미 중 하나다.
2. 도시마다 즐기는 로컬 맛집 탐방과 진짜 일본의 일상
둘째 날부터는 더 본격적인 종단 여정이 시작되었다. 기차는 오카야마를 지나 오사카로 향했고, 오사카에서는 테이크아웃 가능한 명물 타코야키를 맛봤다. 흔히 알려진 명소 대신, 이 여행자는 줄을 서서 사 먹는 현지인 맛집을 찾아 경험했다. 짧은 시간 안에 맛보는 진짜 오사카의 맛. 바로 그런 것이 로컬 감성이다. 기차 여행은 이런 작고 빠른 경험들을 계속해서 축적해간다. 이어지는 나고야에선 된장 돈카츠로 저녁을 해결했다. 나고야의 독특한 식문화인 된장 소스는 처음엔 낯설었지만,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주며 새로운 미식의 문을 열어주었다.
하루 종일 기차에 앉아 있는다는 것이 단조로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역마다 내릴 때마다 새로운 표정의 일본을 만날 수 있었다. 시즈오카에선 숙박비를 줄이기 위해 체인 호텔을 이용했고, 간결하지만 깔끔한 숙소에서 짧은 휴식을 취했다. 무엇보다 이 여행의 핵심은 ‘빠르게 지나가되, 순간의 경험에 몰입하는 것’이었다. 각 도시마다 유명한 음식 한 가지씩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 한 끼를 제대로 즐기는 식도락 여행은 단조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쿄에서는 라멘 스트리트라는, 일본 전역의 유명 라멘이 집결된 식당가를 방문했다. 긴 대기 시간과 혼잡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도쿄만의 전투적인 외식 문화를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여정에서 우쓰노미야의 교자(만두), 센다이의 우설구이(규탄), 그리고 모리오카의 냉면 등 일본의 지역 먹거리를 하나하나 섭렵해갔다. 특히 모리오카 냉면은 한국식 냉면을 현지화한 독특한 맛으로, 예상 외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식도락뿐만 아니라 철도 그 자체를 즐기는 철도 애호가들도 여정 곳곳에서 만났다. 오사카, 도쿄, 센다이 등에서는 철도 마니아들이 기차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열차를 기다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문화’이자 ‘취미’이며, ‘생활의 일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전철을 타고 여행하는 경험은 더욱 특별해진다. 단지 도착지에 가는 것 이상의 의미,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이 되는 여정이었다.
3. 후카이도 상륙과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깊은 인상
모리오카 이후로는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로 향하는 관문이자, 여정의 마지막 구간이 시작되었다. 철도가 끊기는 바닷가 지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배를 이용해야 했고, 여기서 야간 페리를 타고 도마코마이 항으로 넘어갔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평상형 다다미 좌석 대신, 약간의 비용을 추가하여 독방을 이용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고생 끝에 얻은 휴식. 이는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홋카이도에 발을 디디자마자 체감할 수 있었던 건, 확연히 다른 기온이었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선선했고, 오히려 반바지를 입고 있기 민망할 정도의 시원함이 인상 깊었다. 도마코마이 항에서 마지막 열차를 타고 삿포로에 도착했을 때, 그간 2,000km를 달려온 피로감과 동시에 성취감이 밀려왔다. 5일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비행도 없이 오직 전철만으로 일본 열도를 종단한 것이었다.
이 여정의 마무리에서 여행자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행 전에는 '자국 뽕'이라는 말로 일본인의 자긍심을 다소 비판적으로 보았지만, 여정을 마치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교통망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편의점, 숙소, 음식, 관광 인프라가 탄탄했다. 큰 도시가 아닌 소도시에서도 삶의 질이 유지되는 모습은 '왜 일본인이 해외여행을 잘 가지 않는지'를 설명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여행은, 단순한 찬사가 아닌 현실적인 조언도 담고 있다. 청춘18티켓은 확실히 매력적인 상품이지만, 장거리 전철 여행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후쿠오카에서 삿포로까지의 여정은 누군가에겐 낭만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고역일 수 있다. 더 나은 활용법은, 예를 들어 도쿄에서 오사카까지를 5일간 천천히 이동하는 식의 중거리 여행이다. 그렇게 한다면 일본 전철 여행의 진짜 매력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