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과 미쉐린이 극찬한 세계적인 명소, 전북 진안의 마이산탑사. 기암괴석 사이 80여 개의 돌탑과 천혜의 자연이 어우러진 이곳은 당일치기 대중교통 여행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신비한 돌탑의 정취부터 흑돼지 불고기까지, 오감이 즐거운 하루치 여행을 지금 만나보자.
1. 대중교통으로 만나는 세계 명소, 마이산
서울 용산역에서 아침 7시 9분 열차를 타고 전주로 향한 이번 여행은 약 두 시간의 이동으로 시작된다. 전주역에 도착한 뒤 마이산 남부주차장까지는 로컬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여행자는 '마령'행 버스를 이용하여 '마이산 탑사' 인근까지 이동하는데, 이 로컬 버스는 정식 요금도 받지 않는 순수한 시골 마을버스 형태다. 인근 주민들의 일상 교통수단을 함께 이용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버스를 안내해준 친절한 아주머니와 마주친 순간은, 정겨운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버스는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드디어 마이산 남부주차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가 시작된다. '마이산(馬耳山)'이라는 이름은 멀리서 보면 말의 귀처럼 솟은 두 봉우리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각각 '암마이봉(687.4m)'과 '수마이봉(681.1m)'이라 불린다. 오늘 코스는 남부주차장에서 시작하여 탑사와 은수사, 암마이봉을 거쳐 북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약 5km, 3시간 코스다.
걷기 전, 주차장 인근에 위치한 식당에서 Wild Vegetables 비빔밥과 흑돼지 불고기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다. 들기름 향이 솔솔 풍기는 비빔밥 위에 얹힌 산나물은 무려 8가지. 밥 한 숟갈에 산나물과 고추장을 살짝 얹어 비벼 먹으면, 이보다 더 완벽한 등산 전 식사는 없을 정도다.
식사 후 길을 따라 오르면 탑영제라는 인공 호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잔잔한 호수 너머로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진 이 풍경은, 첫 인상부터 여행자에게 깊은 감동을 전한다. 봄빛에 물든 연둣빛 나뭇잎과 하늘을 향해 뻗은 봉우리의 기세는 신비로움 그 자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신비한 산속의 성소, '탑사'로 향한다.
2. 수수께끼 같은 석탑들, 탑사에서의 시간
마이산 탑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유일하게 1인에 의해 세워진 약 80여 개의 석탑이 절집을 이루는 기이하고 신성한 장소다. 이 탑들은 모두 '이갑룡'이라는 인물에 의해 세워졌다. 조선 말, 세상이 어지러울 무렵 25세의 젊은 승려였던 그는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이 산 속으로 들어와 30여 년간 맨손으로 하나하나 돌을 쌓아 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계나 시멘트 하나 없이 오직 무게와 균형만으로 쌓은 석탑들. 그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비감이 배가된다.
탑사의 입장료는 3,000원. 입장과 동시에 펼쳐지는 석탑들의 광경은 마치 사람이 만든 신화 속 공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수십 미터 높이로 올라간 석탑들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각 탑에는 천지탑, 오행탑 등 이름과 상징이 붙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탑은 '천지탑'으로, 남성적 에너지를 뜻하는 양탑과 여성적 에너지의 음탑이 나란히 서 있다. 이 구조는 마치 마이산의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을 그대로 반영한 듯해 더 인상 깊다.
석탑 사이를 걷다 보면 자연이 만든 기암괴석과 사람이 만든 돌탑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심지어는 바위의 구멍 사이에 작은 탑을 끼워 넣은 '타포니' 지형도 만나게 된다. 이곳의 모든 석탑은 만지지 말아야 한다. 관광객들이 돌 하나를 얹고 가는 일이 간혹 있지만, 이 석탑들은 완벽한 균형 위에 세워졌기에 작은 추가도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탑사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은수사라는 또 다른 고즈넉한 사찰을 만난다. 이곳은 조선 개국을 꿈꾸던 태조 이성계가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전해지며, 은수사 앞에는 수령 약 640년의 푸른 청실배나무가 자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부딪히며 내는 ‘찰랑’ 소리는, 고요한 산사의 정취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3. 암마이봉 오르기, 자연과 사람의 조화
탑사와 은수사에서 충분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끽한 후,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암마이봉'에 오른다. 이 봉우리는 짧지만 매우 가파른 경사로 유명하다. 정상까지 약 450m 거리지만 경사도는 70~80%에 달해, 등산보다는 ‘기어오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다. 처음엔 나무계단이지만 점점 바위길로 바뀌고, 마지막엔 손을 짚고 올라야 할 만큼 경사가 심해진다.
하지만 그 고된 오름 끝에는 놀라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정상에 오르면 바로 아래 탑영제 호수와 마이산 전경, 그리고 지나온 탑사와 은수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절경은 CNN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 중 하나'라고 극찬한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마이산의 남성적 에너지와 여성적 기운이 서로 교차하며 조화롭게 존재하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내려가는 트레일을 통해 북부주차장 방향으로 하산한다. 하산길 중간에는 '연인의 길'이라 불리는 데크길이 있는데, 이 길에서 바라보는 수마이봉과 암마이봉은 각각 다른 각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형태로 보여 ‘가장 아름다운 연인의 시선’이라 불릴 정도다. 마치 따로 또 같이,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두 봉우리는 수많은 연인들이 인증샷을 남기는 명소이기도 하다.
하산 후, 진안 시내로 향해 흑돼지 불고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앞서 식사한 들나물 비빔밥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이 요리는, 지글지글 끓는 솥 안에서 진하게 배어 나오는 향과 달큰한 맛으로 여행자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마지막엔 진한 청국장까지 더해지며,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의 클로징을 선사한다.
마이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작품이자, 인간의 믿음과 의지가 깃든 성소다. 탑사와 은수사, 그리고 봉우리의 오름까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을 원한다면 마이산은 언제나 옳은 선택이다. 다음 여행의 테마가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면, 망설임 없이 마이산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