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맥도날드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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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시아 금융 허브로 찬란하게 빛나던 홍콩이 지금은 ‘맥도날드 난민’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문제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억압적인 국가보안법, 무너진 민주주의 속에서 많은 이들이 노숙을 택하고 있다. 몰락한 홍콩의 단면을 가까이서 마주한 기록이다.

집대신 맥도날드 매장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

1. 맥도날드 난민, 집 대신 매장을 택한 사람들

홍콩의 밤은 조용하지 않다. 새벽 2시, 도시를 걷다 보면 길가 곳곳에서 잠든 사람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어떤 이는 ATM 앞에서 신문을 덮고 자고, 어떤 이는 플라스틱 의자 위에서 몸을 웅크린다. 이들이 가리키는 상징적 장소는 바로 맥도날드다. 전 세계 어디서든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맥도날드는 홍콩의 노숙자들에게 일종의 대피소다. 이들은 ‘맥도날드 난민’이라 불리며 집을 구할 수 없는 채 매장을 안식처로 삼는다. 한때는 그저 도시의 빈곤층 일부라 여겨졌던 이들이 이제는 사회 구조적 문제의 피해자로 조명되고 있다. 특히 충격적인 건, 이들 중 상당수가 일을 하고 있거나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숙박비를 감당할 수 없어 하루 단위로 ‘안전한 밤’을 사고파는 현실. 맥도날드는 그들에게 냉난방이 되는 쉼터이자 마지막 남은 공공 공간이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작은 원룸 하나도 월세 수백만 원을 넘는다. 이런 현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것 없이도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노숙을 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닌, 홍콩이 처한 정치·경제·사회적 위기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2. 몰락한 자유도시, 홍콩의 변질된 풍경

홍콩은 한때 ‘아시아의 진주’로 불리던 도시였다. 그러나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의 정체성은 서서히 붕괴되어 갔다. 일국양제라는 체계 하에 자치권이 보장되었던 홍콩은 국가보안법의 시행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표현의 자유는 크게 제한되었고, 비판적 시민과 언론, 정당은 체포되거나 해산되었다. 야당은 사라지고, 정치인들은 해외로 망명하거나 투옥되었으며, 시민 사회는 침묵을 강요받았다. 공포 정치 속에서 다수의 국제 기업은 본사를 홍콩에서 철수시키고, 싱가포르나 서울 등지로 이동했다. 이는 대량 실업을 낳고, 빈곤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부동산 거품과 생계 불안이 맞물린 절망적 현실이 있다. 시민의 5명 중 1명이 빈곤층이며, 많은 이들이 공유 숙소나 캡슐호텔, 심지어 공동화장실을 쓰는 방 한 칸에서 생존하고 있다. 길거리에는 외국인 홈리스까지 등장했고, 홍콩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불안정한 체류 속에 노숙자로 전락하고 있다. 지금의 홍콩은 더 이상 자유와 번영의 도시가 아니다. 과거의 찬란했던 이미지는 거리에 널브러진 침낭과, 새벽까지 문을 닫지 않는 맥도날드 안에서 곤히 잠든 사람들의 모습에 가려져 버렸다. 이러한 풍경은 단순한 도시 쇠퇴가 아니라, 체제의 균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회학적 징표다.

3. 희망이 아닌 생존, 그럼에도 인간은 산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한 노숙자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절박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지금 당장 4달러만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이 한마디가 낯선 사람에게 건네지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자존심을 내려놓았을까. 길 위에서 만난 또 다른 외국인도 호텔 체크인을 기다리는 동안 맥도날드 의자에 기대 밤을 지새운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단순한 동정이나 혐오가 아닌, 이해와 연대로 바뀌어야 할 이유다. 한 여행자가 소소하게 나눈 한 끼 식사,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지 생각해본다. 아무리 처참한 상황이라도 사람은 사람이다. 맥도날드 난민은 도시의 실패가 낳은 피해자이지, 실패한 인간이 아니다. 홍콩의 현실은 전 세계적인 도시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삶의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는 도시에서, 인간의 존엄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이 영상은 우리 모두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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